감정소통이 어려울 때

밀리고 밀리는 척력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여기로 와 있는 느낌 말이다. 가장 예민할 때는 가까운 사람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때다.

감정소통이 안되고, 대화거부를 경험할 때, 그 때 연락을 한 동안 안 했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쭉 한 바퀴 돌린다든가 하는 적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했다” 내 경험상도 그렇지만 그 사람은 어딘가에 치여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주로 그 상황에서 배달해두고 다 먹지도 못한 너덜너덜해진 마라샹궈 같은 말을 상대방에게 주로 듣는다. 반대로 이미 토대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면 그 상황에서 연결이 된다.

“아 뭐 그렇지~” 이런 대답을 듣는다는 건 이미 공유지가 없다는 증거다. 그게 없으므로 감정이 연결되었다는 경험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적 소통은 당신과 내가 동기화된 채 예측하고 범주화 할 때 일어난다. 공유지든 뭐든 사전에 서로의 단어와 개념, 맥락이 이미 공유되어야 감정소통이 된다.

생각보다 그런 속 시원한 상황은 별로 없다. 그건 참 개같은 일이다. 당신이 언제 한 번 밥먹자, 별 일 없냐,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따위의 말을 서로 기분좋게 교환하고나서 전화를 끊고 조금 뒤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거나 기분이 드러워지는 경험이 있다면, 내 기준에서는 정상이다.

전혀 동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와이파이 끊기면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버벅이는 모습보고 답답함이 오르는 게 정상이다. 로딩속도 느린 것 처럼 피드백이 재깍재깍 오지 않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화가난다. 게임회사 운영진의 패악질에 피드백도 받지 못하니 피켓들고 시위한다.

내가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의 모습을 보고 나라고 생각하거나, 나와 밥을 먹고 전화를 하고 있을 때의 모습을 보고 나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내게 예측 당한 것이다. 일에 치여 지인에게 연락을 돌렸을 때 당신은 얼마나 편했나.

“응~ 고생해~” “언제 함 봐야지~”


그렇게 인간사에 허무함이나 비관적이 될 것이나 당신 역시 개념을 제시해야 하고, 먼저 패를 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랜 부족민의 관습처럼 밥이나 술을 마시며 자원을 축내거나 단톡방의 쑥덕거림, 개인의 성격을 두고 저건 좋은 놈이네 나쁜놈이네 하며 인상비평을 하다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게 인간이 멍청해지는 길이다.

남자들이 여자를 꼬실 때, 대화도 잘 되고 반응도 좋았고 그 날 모텔까지 갔는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고소를 당한다든가 하는 상황을 겪을 때가 있다. 그 것 역시 동기화에서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같은 개념을 공유하지 않고 감정적 소통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계밟고 목표달성하니 상대입장에서는 먹튀당한 느낌이 든다.

내가 잘해주면 상대가 기고만장 해져서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감정을 이해해 주기를 요구했는데 지속적으로 성의없는 반응을 보이면서 자존감에 지속 데미지가 쌓인다. 그러던 중 정신차리고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상대가 뭘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면, 어느 새 매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내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지” 하는 자존감을 보존하는 행동과 동기화된 감정소통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밥 챙겨먹었어?”, 저녁에는 “자니?” 하며 관심의 부스러기를 챙겨먹으면 자존감이야 향상 되겠지만 속이 더부룩한 이유는 역시 개념의 공유와 사례에 따른 동기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소통과 밀도

왜 짜증을 내?”
“그러는 너는 왜 말을 그렇게 하지?”

이 걸 대화로 풀 수 있는 방법? 없다. 진짜로 없다. 상황이 이렇게 치닫는 이유는 말을 그렇게 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 관계의 밀도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밀도가 튼튼하면 서로 귀엽게 받아치거나, 분명한 단서를 제공하여 언어를 전달한다.

숨이 막혀가면서 벽에 치닫는 느낌, 아무것도 할 수 없음, 무력감, 혼자됨, 고립, 감정을 이해받지 못함, 쓸쓸함, 굉장한 아픔을 체험한다. 내 뇌에 시뮬레이션 된 이 감정은 물리적으로 실재가 된다.

감정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고전주의적 접근법이다. 아이를 교육할 때도, “이럴 때 웃어야지 왜 안웃어?”라는 것도 틀린 접근이다. 미소지음이 행복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감정을 탐지하는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말을 할 때도 상대의 표정이나 감정을 탐지하고 말하면 계속 관찰자 포지션에 있게 된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그냥 말하는 게 낫다.

그 후에 상대의 반응을 확인하면 된다. 감정이 만들어 지려면 두 개 이상의 뇌가 필요하다. 뇌가 서로 연결되면 서로 도킹하면서 실시간으로 감정이 창조된다.

당신과 나는 어마어마한 다양성 속에서 뇌의 예측 메커니즘을 통해 감정을 소통한다. 당신의 감정은 당신의 에측에 의해 인도된다.

내가 당신을 관찰할 때, 내가 지각하는 감정은 나의 예측에 의해 인도된다. 그러므로 감정적 소통은 당신과 내가 동기화된 채 예측하고 범주화할 때 일어난다.

감정적으로 소통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동기화와 예측이 핵심 키워드다.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예측을 할 수가 없으면 진짜로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서로 예측이 가능하려면, 미리 동기화되어야 한다.

밀도, 도킹, 이런 용어를 ‘동기화’ 라고 바꿔도 된다. 동기화가 안된 상태에서 말을 섞고 대화를 하려고 하니 자꾸 어긋난다. 두 사람은 서로 사귄다고 하겠지만 그거 만난 거 아니다.

물이 엎질러진 것을 두고 왜 엎질렀냐고 해봤자지.

왜?
어떻게?
보다, 어디에서왔냐는 물음이 정확하다.

“왜 그랬어?” 이상하게 이 언어패턴은 상황을 주도하지 못한다. 자기도 어떻게 할지 알고 있다면 왜 라고 안따져 물을테니까. 왜라고 물어봤자 어차피 상대의 말을 받아치므로 상황 해소가 안된다.

회의를 하더라도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물어봤자다. 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테니까. 오히려 의표를 찌르거나 상대를 유도해야 한다. 물론 내가 의도하고 있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도 방법으로 사용할 수는 있다.

지난 100년간 인간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했던 심리학의 노력들이 헛수고라는 게 밝혀지고 있다. 너는 이런게 문제고, 너는 이런 성격이 문제고, 자신의 이런 성격적인 단점을 고치고, 그 해결방법을 연구하는게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

없다. 방법이라는 개념을 추상할때, 그것은 인간이 그 대상을 직접 건드린다는 것이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유혹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에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내면의 짐승을 다스린다? 그거 건드리면 안된다.

추가 칼럼

자존감 높이기? 중요한 사실 1가지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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